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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속 100층짜리 집

    하프를 연습하던 오토는 낯선 소리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문이 달린 커다란 나무를 발견한다.

    이와이 도시오가 글을 쓰고 김숙이 옮긴 『숲속 100층짜리 집』의 여정은 이렇게 연습 도중 들려온 소리에서 시작된다. 책 소개와 창작자 정보 돌보는 사람의 처지에서 이 장면을 보면, 호기심을 따라가는 사람 곁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눈길이 간다.

     

    연습에는 되풀이가 필요하다. 익숙한 자리를 지키고 한 번 더 해 보는 시간에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오토는 자신이 따라가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소리를 들으러 가는 쪽이 언제나 더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하던 일을 계속할 이유만 따지다 보면 새롭게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들을 틈조차 없어진다.

     

    아이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어른에게는 다음 일정이 있다. 마쳐야 할 일도 남아 있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을 모두 따라가기는 어렵다. 아이의 관심을 알아차리는 것과 그쪽으로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은 별개의 선택이다.

    잠깐 멈추기로 하면 어른은 자신이 세운 순서의 일부를 미루게 된다.

     

    오토는 나무 집에서 곰 가족을 만나고 위층으로 올라가며 여러 생물을 만난다. 이들은 100층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새를 만난 오토는 100층에 도착한다. 소리를 따라 나선 길에서 다른 이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을 만나는 대목이 흥미롭다.

    자기 관심에서 시작한 탐색이 남의 일과 맞닿는 셈이다.

     

    이 만남을 생각하면 기다림을 어른이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내어 주는 시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아이의 관심을 존중하는 동안 어른의 사정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다리는 쪽의 피로와 약속을 지워 버리면 호기심을 지켜 주겠다는 마음은 오래 버티기 힘들다. 끝없이 기다려 주어야 좋은 보호자라는 기준도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늘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서둘러야 하는 날과 익숙한 순서를 바꾸기 싫은 날은 다르다.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도 아이의 관심을 쓸모없다고 낮추지 않으면서 일정을 설명할 여지는 있다. 지금 멈출 수 없다는 말과 네가 궁금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오토의 여정을 호기심의 성공담으로만 읽으면 낯선 소리를 따라간 시간이 연주회라는 도착점으로 보상받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삶에서 모든 관심이 그만큼 분명한 결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끝까지 알아내지 못하거나 곧 흥미를 잃는 일도 있다. 그때까지 쓴 시간이 아까운지만 따지면 호기심은 시작하기도 전에 성과를 약속해야 한다.

     

    아이에게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물은 뒤 곧바로 무엇을 배웠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배운 것을 말로 정리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아직 설명할 말이 없는 관심까지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모르면서 한참 바라본 대상이나 다시 찾지는 않더라도 잠시 발걸음을 붙든 소리도 그 순간의 관심으로 남을 자리가 필요하다.

     

    함께 읽는 어른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을 수 있다. 아이의 질문에 답을 마련하는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도 궁금한 것을 말하는 자리다.

    서로 관심이 다른 두 사람이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다만 한쪽이 멈추었을 때 다른 쪽이 곧바로 끌고 가지 않는 순간은 상상해 볼 수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 줄 수 있을까?

  • 가나다 소풍

    《가나다 소풍》에서 나는 커다란 나뭇잎을 타고 가는 다람쥐 형제를 눈여겨본다. 한글 말놀이 그림책이라면 어떤 글자를 어떻게 보여 주는지 먼저 살피기 쉽지만, 이 책에서는 형제가 잎을 타고 무엇을 겪는지가 궁금하다.

    한글에 관심을 두면서 이야기도 함께 즐기고 싶은 독자라면 이 두 관심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살펴볼 만하다. 형제는 가을 숲을 둘러보고 곤충들과 인사를 나누며 나뭇잎을 타고 가다가 바람과 뜻밖의 사고를 만난다.

    여기에 가나다 순서의 음절과 자음을 활용한 문장이 놓인다. 《가나다 소풍》의 이야기와 문장 구성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글자의 차례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형제의 소풍이다.

     

    가나다 소풍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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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마다 첫 문장은 가나다 순서의 음절로 시작하고 다음 구절에는 해당 자음을 활용한 단어가 나온다. 시작 음절을 따라가면서 구절 안의 단어도 살피게 된다.

    나는 다음 글자를 예상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좋다. 낯선 문장을 만나더라도 그 시작에는 알아볼 만한 순서가 있다.

    그렇다고 음절의 순서를 안다고 해서 문장에 담긴 일까지 아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나올 글자를 짚는 재미와 다람쥐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다르다.

    이 책의 문장 구성은 그 둘을 한꺼번에 살필 자리를 마련한다.

     

    그 자리에 놓인 나뭇잎은 낱말을 이야기로 이어 주는 소재다. 가을 숲의 잎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람쥐가 타고 가도록 했다.

    잎의 이름을 아는 일만으로는 형제의 행동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무엇을 타는지 알아보았다면, 이제는 그것을 타고 가는 일이 궁금해진다.

    나는 가을에 어울리는 사물을 골랐다는 점보다 그 사물에 쓰임을 준 선택을 높이 평가한다. 이 소풍에서 잎은 형제의 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숲을 둘러보는 이야기 안에서 주변의 것과 등장인물의 행동이 이렇게 맞물린다.

     

    다만 잎을 탈것으로 삼았다는 발상만으로 이 소풍을 즐거운 상상이라고 정리하기는 어렵다. 형제는 바람과 예기치 못한 사고도 만난다.

    이 사정을 함께 놓고 보면 나뭇잎의 쓰임을 두고 내리는 판단도 달라진다. 잎을 타는 일에는 기발함이 있지만, 형제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소풍은 아니다.

    나는 그 뜻밖의 일을 겪는다는 점까지 포함해야 이 소재의 재미가 충분해진다고 생각한다. 다람쥐에게 잎을 타게 하는 것으로 상상을 끝내지 않고 그 여정에 형제가 감당할 사정도 둔다.

    무엇을 타는가에 쏠렸던 관심이 그것을 타고 어떤 일을 겪는가로 옮겨간다.

     

    곤충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에서는 소풍의 다른 면이 보인다. 숲은 형제가 둘러보는 장소이면서 누군가와 마주치는 곳이다.

    곤충의 이름을 문장에 넣는 일과 형제가 곤충에게 인사하는 일은 느낌이 다르다. 이름을 알면 대상을 구별할 수 있지만, 인사를 건네면 형제와 그 대상 사이의 행동도 생긴다.

    이 작은 차이가 마음에 든다. 잎을 타고 바람과 사고를 겪는 일에만 관심을 두면 놓치기 쉬운 소풍의 만남이다.

    함께 읽는다면 어떤 곤충인지 짚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형제가 누구에게 인사하는지도 이야기해 볼 만하다. 정답을 확인하듯 이름을 묻기보다 그 만남에 잠시 머물러도 좋겠다.

     

    이런 행동과 만남에 관심을 두다 보면, 문장의 규칙을 얼마나 자주 확인할지도 생각하게 된다. 자음을 활용한 단어를 알아보는 일은 이 책의 재미지만, 매번 글자를 찾아야 한다면 소풍의 앞일이 궁금한 독자에게는 번거로울 수 있다.

    나는 글자의 짜임이 분명하다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빠짐없이 확인하는 읽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형제가 겪는 일을 따라가다가 문장 첫머리의 순서를 알아차려도 좋고 눈에 들어온 단어 하나를 잠깐 살펴도 좋겠다.

    한 문장에 이야기와 말놀이가 함께 있다고 해서 매번 둘을 똑같이 다룰 필요는 없다. 읽는 사람의 관심에 따라 어느 쪽을 더 오래 살필지 달리할 여지가 있다.

     

    처음 주목한 커다란 나뭇잎을 다시 생각하면, 이제는 다람쥐에게 어울리는 재미있는 탈것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아쉽다. 그 잎을 타는 형제는 바람과 사고를 겪고 숲에서는 곤충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름을 알아볼 대상들이 형제의 행동과 사정에 얽혀 있다. 나는 《가나다 소풍》의 장점을 여기서 찾는다.

    가나다를 따라 문장을 구성하면서도 잎은 타는 것이 되고 곤충은 인사를 나누는 상대가 된다. 글자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놓치지 않을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 소풍은 다음 음절을 맞히는 것만으로 다 알았다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 컬러 몬스터: 감정의 색깔, 색종이로 마음 표현하기

    『컬러 몬스터: 감정의 색깔』은 감정이 뒤섞인 몬스터가 소녀와 함께 감정을 구분하는 이야기입니다. 기쁨, 슬픔, 화, 무서움, 평온함을 색깔과 친숙한 사물에 연결합니다.

    책의 이런 연결에서 시작해, 책을 읽은 뒤 아이가 고른 색으로 종이 몬스터를 만들어 봅니다. 아나 예나스가 글을 쓰고 김유경이 옮겼습니다.

    교보문고 도서 정보와 책 소개

     

    컬러 몬스터: 감정의 색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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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 고르기나 그림 그리기에 관심 있는 아이가 보호자·교사와 함께 시도할 활동입니다. 아이가 어떤 색과 말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지 들어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책 읽기와 대화에 10분, 만들기와 마무리에 10분을 잡아 총 20분 정도를 계획합니다. 읽는 속도와 반응에 따라 시간을 줄여도 됩니다.

     

    함께 책을 보고 종이를 펼칠 수 있는 조용한 자리를 고릅니다. 책, 종이, 색연필 또는 크레용은 꼭 준비합니다.

    색종이와 풀은 선택 사항입니다. 색종이는 손으로 찢어 쓰면 됩니다.

    여러 아이가 함께할 때는 종이를 한 장씩 준비합니다.

     

    읽기 전에는 표지와 제목을 함께 보며 묻습니다. “감정에도 색깔을 붙인다면 어떤 색이 떠오르나요?”

    “여러 색이 함께 있으면 어떤 느낌인가요?” 대답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색을 가리키면 그 선택부터 받아줍니다. 이유는 말하고 싶어 할 때만 묻습니다.

     

    읽는 중에는 감정 하나를 골라 잠깐 멈춥니다. “이 감정을 다른 색으로 나타내면 어떤 색일까요?”

    “책에서 감정과 이어 놓은 사물은 어떤 느낌인가요?” “몬스터에게 여러 감정이 함께 있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나요?”

    질문은 한 번에 하나씩 건넵니다. 아이가 책을 계속 보고 싶어 하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다섯 감정을 모두 물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1. 책에서 다룬 감정 중 이야기하고 싶은 것 하나를 고릅니다. 지금의 마음을 골라도 되고, 몬스터의 감정 하나를 골라도 됩니다. 감정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색부터 선택합니다.
    2. 종이에 몬스터 모양을 자유롭게 그립니다. 몸의 모양을 정하기 어려우면 어른이 둥근 윤곽을 그려주고 아이가 이어 그리도록 합니다.
    3. 고른 색으로 몬스터를 칠하거나 찢은 색종이를 붙입니다. 한 색만 써도 되고 여러 색을 함께 써도 됩니다. 책과 다른 색을 골라도 그대로 둡니다.
    4. 그림을 보며 “이 색에 어떤 이름을 붙이고 싶나요?”라고 묻습니다. 아이가 말한 이름을 그대로 적어줍니다. 설명을 더하고 싶어 하면 “이 마음의 몬스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이어 묻습니다. 이유를 짐작해 대신 말하지 않습니다.
    5. 그림을 둘 곳은 아이가 고릅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놓거나 접어 보관한 뒤 재료를 정리하며 마칩니다. 다른 날 다시 보고 싶다면 색이나 이름을 바꿔도 된다고 안내합니다.

     

    말하기가 부담스러우면 질문을 줄이고 색을 고르거나 그림만 그리도록 합니다. 만들기가 내키지 않으면 책을 보는 것으로 마쳐도 됩니다.

    여러 아이가 참여하더라도 모두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공개할지도 아이가 고릅니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피하면 그날의 일을 더 캐묻지 않습니다. 아이가 싫다고 말하거나 종이를 밀어내면 활동을 멈춥니다.

    마무리에는 잘했는지 평가하기보다 아이가 붙인 이름을 한 번 읽어주고 끝냅니다.

  • 가을의 스웨터

    《가을의 스웨터》에서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새 옷보다 작아진 옷이다. 수리는 친구 사키와 미코 아줌마의 양장점을 찾아가고, 미코 아줌마는 기존 스웨터의 실을 풀어 새 스웨터를 만든다.

    가을에 함께 읽을 그림책을 고른다면, 나는 계절의 특징보다 이 선택을 먼저 살펴보고 싶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바꾸면서도 그 실은 남겨 두기 때문이다.

    익숙한 물건을 계속 쓰려면 무엇을 그대로 두고 무엇을 바꿔야 할까. 이 책에서는 옷의 크기뿐 아니라 옷을 입을 수리의 생각도 그 물음에 답한다.

     

    가을의 스웨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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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을 풀면 스웨터는 원래 모양을 잃는다. 그래도 그 실로 다시 옷을 뜰 수 있으니 예전 모습을 붙들지 않아도 남길 것은 있다.

    나는 이 선택이 좋다. 작아진 옷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지금 몸에 맞는 옷이 필요한 사정을 함께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새 옷을 마련할 때는 이전 옷과 헤어질 뿐 아니라 남은 실을 어떻게 쓸지도 정한다. 같은 실로 만든다는 사실만으로 새 스웨터의 의미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수리에게 맞게 달라지는 부분까지 보아야 이 선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

     

    미코 아줌마는 수리가 생각하는 가을의 풍경과 소리, 먹고 싶은 것을 묻는다. 이 질문들을 보면 몸에 맞는 옷이라는 말의 뜻이 넓어진다.

    치수에 맞춰 크게 뜨는 데 그치지 않고 수리가 어떤 가을을 느끼는지 듣고 그 생각을 옷에 담는다. 나는 어른이 계절의 특징을 골라 넣는 대신 수리에게 묻는 대목을 높이 평가한다.

    가을이라는 같은 계절을 이야기하더라도 옷에 담고 싶은 것은 입을 사람에게 물을 수 있다. 수리는 완성된 옷을 받아 입을 사람이면서 새 옷에 무엇을 담을지 정하는 데 자기 말을 보탠다.

     

    그 가운데 먹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이 특히 마음에 든다. 풍경과 소리는 주변을 보고 듣는 일에 가깝지만 먹고 싶은 것은 자기 몸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일이다.

    계절을 말할 때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을 골라야 할 이유는 없다. 배가 고프거나 어떤 음식이 생각나는 마음도 답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질문 덕분에 수리의 가을을 한층 가깝게 이해하게 된다. 옷에 담기는 계절은 바깥의 풍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리가 보고 듣는 것에 입맛까지 더해지면서 같은 가을에도 이 아이가 원하는 옷은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수리가 원하는 주머니를 보면 수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이라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리는 엄마에게 드릴 도토리를 많이 담고 싶어 하고, 완성된 스웨터에는 큰 주머니가 마련된다.

    자기 옷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것도 생각한다. 먹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서는 수리의 입맛에 관심이 갔다면, 이 바람에서는 수리가 누구를 떠올리는지 보게 된다.

    엄마에게 줄 도토리라는 말 때문에 큰 주머니가 필요한 까닭도 또렷해진다. 옷은 몸을 감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리가 하고 싶은 일을 도와준다.

     

    나는 이 주머니를 다정한 마음의 상징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한다. 도토리를 많이 담으려면 실제로 넉넉한 자리가 필요하다.

    수리의 바람에 따라 옷의 한 부분을 얼마나 크게 만들지 정한다는 점이 좋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막연한 칭찬으로 끝나지 않고 쓸 수 있는 모양을 얻는다.

    그렇다고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교훈을 앞세우고 싶지는 않다. 엄마에게 도토리를 드리고 싶은 것은 수리의 바람이다.

    그 마음을 좋게 보는 것과 아이에게 같은 답을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이 책에서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수리의 소망을 듣고 그 소망에 맞춰 옷을 만드는 선택이다.

     

    함께 읽는 자리에서도 큰 주머니의 쓰임을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왜 수리에게 작은 주머니로는 부족할지 책 속 바람을 짚으며 물을 수 있다.

    이어 각자 자기 주머니에 넣고 싶은 것을 말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두 수리처럼 도토리를 고를 필요는 없다.

    먹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이 수리의 입맛을 받아 주듯, 이 대화에서도 각자의 답을 들을 여지가 있었으면 한다. 다만 질문을 따라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수리의 답 때문에 옷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함께 살펴보면 이 이야기의 장점이 더 분명해질 듯하다.

     

    처음 관심을 두었던 작아진 스웨터를 다시 생각하면, 실을 남기는 선택도 다르게 보인다. 같은 실을 쓴다는 것만으로 익숙한 옷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수리가 느끼는 가을과 도토리를 담고 싶은 바람을 받아 새 모양으로 뜰 때, 그 실은 지금 수리에게 필요한 옷이 된다. 나는 이 책이 옷을 입을 사람의 말을 실제 쓰임에 반영한다는 점을 좋아한다.

    큰 주머니는 그 선택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작아진 옷에서 무엇을 남길지에 관심이 갔지만 이제는 남은 실로 누구에게 어떤 옷을 만들어 주는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익숙한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지금의 수리를 살피는 일로 이어져서 새 스웨터가 설득력을 얻는다.

  • 마음 토닥 촉감책 참 잘했어, 아기 고양이야

    《마음 토닥 촉감책 참 잘했어, 아기 고양이야》는 고양이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과 손으로 만질 자리를 함께 둔 그림책이다.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촉감 탐색에 관심이 있는 독자와 함께 읽을 책을 고른다면, 무엇을 칭찬하는 책인지도 살펴보고 싶다.

    제목만 보면 아기 고양이가 무언가를 해낸 뒤 듣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교보문고의 작품 소개에 나오는 고양이는 부끄러움이 많다.

    밖으로 나가 무당벌레에게 인사하고 비와 물웅덩이를 마주한다. 이런 고양이에게 잘했다는 말은 어떤 때 어울릴까.

     

    마음 토닥 촉감책 참 잘했어, 아기 고양이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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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벌레에게 인사하는 일부터 생각하게 된다. 인사는 흔한 행동이지만 부끄러움 많은 고양이에게도 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네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나는 이 작은 행동을 칭찬할 일로 바라보는 선택이 좋다.

    인사를 얼마나 씩씩하게 했는지보다 먼저 다가갔다는 사실에 관심을 둘 수 있어서다. 큰 성취가 있어야만 잘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아니다.

    제목의 칭찬도 고양이가 거둔 결과를 따지는 말보다 해 보려는 마음을 알아주는 말에 가까워진다.

     

    비와 물웅덩이를 보며 그 생각을 조금 더 넓혀 본다. 인사는 고양이가 시도하는 일이지만 날씨는 용기를 낸다고 뜻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를 마주한 일을 곧바로 실패라고 부를 이유도 없다. 인사와 비를 함께 놓고 보면 바깥에서 겪는 모든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로 가르기는 어렵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시도에는 힘을 실어 주고 싶지만 낯선 상황 앞에서는 우선 다독이는 말이 어울릴 수도 있다. 나는 고양이가 밖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 계속 용감해야 한다고 기대하지 않는 쪽으로 이 책을 바라보고 싶다.

     

    작품 소개에 나온 말도 칭찬만은 아니다. 괜찮다는 위로, 용기를 내라는 격려, 할 수 있다는 응원이 시도를 칭찬하는 말과 함께 있다.

    이 가운데 나는 괜찮다는 말이 특히 좋다. 잘했다는 말과 할 수 있다는 말은 앞으로 해 볼 일에 힘을 보태지만 괜찮다는 말은 당장 무언가를 더 해내지 않아도 건넬 수 있다.

    망설이는 상대에게 늘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말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이런 여러 말이 한 책에 담겨 있어 마음에 든다.

    고양이를 격려하는 방식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제목의 칭찬에도 여유가 생긴다.

     

    촉감책이라는 형식에서는 고양이의 몸에도 관심이 간다. 작품 소개에서 설명하는 다섯 촉감면은 콧등, 발, 등, 턱, 배에 있다.

    만질 자리가 주인공의 몸 곳곳에 놓여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당벌레에게 인사한 행동을 두고 말을 건네는 한편, 손은 고양이의 콧등이나 등을 향할 수 있다.

    나는 이 구성이 다정한 표현과 잘 어울린다고 본다.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하다가도 고양이 자체로 눈길을 돌릴 구체적인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말로 응원하는 일만 앞세우지 않고 손으로 살펴볼 부분도 함께 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다만 몸을 만지는 행동에 반드시 응원이라는 뜻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촉감면에 손을 대는 독자는 그저 만져 보는 데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때마다 고양이의 마음을 묻거나 인사를 잘했다고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작품 소개는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촉감면을 만지며 응원의 말을 건네는 읽기 방식을 제안한다.

    나는 그 제안을 책의 말을 들려줄 기회 정도로 받아들이고 싶다. 한 부위를 고르는 일과 한마디를 듣는 일이 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탐색하는 관심을 그대로 두어도 책의 다정함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읽는 자리에서도 고양이에게 건네는 말과 독자에게 요구하는 행동은 구분하면 좋겠다. 고양이가 인사한다고 읽는 사람도 바로 인사를 해 보여야 할 이유는 없다.

    잘했다는 말을 들려주려고 또 다른 과제를 만들면 작은 시도를 알아주던 칭찬의 뜻이 흐려질 수 있다. 나는 이 책의 표현을 따라 말하되 대답이나 참여를 기다리는 방식은 느슨하게 두고 싶다.

    콧등을 만져 보고 싶다면 거기에 머물러도 되고 고양이에게 건네는 말에 관심이 간다면 그 말을 함께 살펴봐도 된다.

     

    제목에서 시작한 관심은 이제 고양이가 무엇을 잘했는지보다 그 곁에 어떤 말과 자리가 있는지로 옮겨 간다. 무당벌레에게 인사하는 시도에는 칭찬을 떠올릴 수 있고 비와 물웅덩이 앞에서는 괜찮다는 위로도 생각할 수 있다.

    콧등과 등에 놓인 촉감면은 그런 말을 잠시 쉬고 고양이를 살펴볼 자리로도 받아들일 만하다. 이 책에서 내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작은 행동을 알아주면서도 주인공을 칭찬받을 행동만으로 설명하지 않는 구성이다.

    제목의 잘했다는 말 곁에 위로와 격려, 손으로 만질 자리가 함께 있다. 그래서 이 칭찬을 다음에도 잘하라는 주문보다 바깥에 나선 고양이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로 읽고 싶다.

  • 여우 요괴, 마음을 그리는 독후활동

    『여우 요괴』는 사람의 간을 노리는 요괴와 혼인을 제안하는 김 생원이 쉰 해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인물이 무엇을 바라는지 묻고, 아이가 고른 말이나 그림으로 마음을 살펴보는 독후활동을 제안합니다.

    정진호가 글과 그림을 맡았으며, 이야기 설정은 교보문고 도서 상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달(킨더랜드)의 책으로, 교보ebook 도서 정보에도 제목과 작가, 출판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여우 요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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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이야기의 낯선 인물이 궁금하거나 인물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싶은 독자와 시도해 봅니다. 인물의 마음을 하나로 정하지 않고 책에서 눈에 띈 말과 행동을 함께 살핍니다.

    보호자나 교사는 질문을 건네되, 아이가 먼저 꺼낸 말이 있으면 그 말에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예상 시간은 20분입니다. 준비와 표지 대화 3분, 함께 읽기 8분, 읽은 후 활동 7분, 마무리 2분으로 나눕니다.

    읽기가 길어지면 활동을 줄이거나 다음으로 넘깁니다. 조용한 자리에 앉아 같은 책을 함께 봅니다.

    교실에서는 두세 명씩 책을 가까이 두고 진행합니다.

     

    필수 준비물은 『여우 요괴』, 종이 한 장, 연필입니다. 색연필과 인물 이름을 적을 작은 종이는 필요에 따라 준비합니다.

    종이는 미리 반으로 접어 둡니다.

     

    읽기 전에는 제목과 표지를 함께 봅니다. “요괴라는 말에서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표지에서 더 보고 싶은 부분은 어디인가요?”라고 묻습니다.

    무섭다고 답해도 이유를 설명하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읽는 중에는 김 생원이 혼인을 제안하는 대목에서 “김 생원은 왜 함께 지내자고 했을까요?”라고 물어봅니다. 두 인물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분에서는 “처음과 비교해 달라 보이는 말이나 행동이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아이가 가리킨 부분을 함께 봅니다. 질문 때문에 흐름이 끊기면 나머지는 읽은 뒤로 미룹니다.

     

    1. 접어 둔 종이를 펴고 왼쪽에는 처음의 여우 요괴, 오른쪽에는 김 생원과 시간을 보낸 여우 요괴를 표시합니다. 그림 대신 이름만 적어도 됩니다. 두 칸은 같은 인물을 서로 다른 때에 생각해 보는 자리입니다.
    2. 각 칸에 요괴가 원했을 것 같은 것을 말이나 그림으로 남깁니다. 두 칸이 같아도 괜찮습니다. “어느 부분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나요?”라고 묻고 책에서 한 곳을 함께 찾아봅니다. 찾은 말이나 행동과 아이가 표현한 마음을 나란히 살핍니다.
    3. 작은 종이 두 장에 인물 이름을 적거나 손가락으로 역할을 정합니다. 김 생원이 건넬 새로운 부탁 한 문장과 요괴의 답 한 문장을 만들어 번갈아 말해 봅니다. 시작할 때 책 속 대사가 아니라 새로 만드는 말이라고 알려 줍니다. 두 인물의 역할을 바꾸어 말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4. 마음 그림이나 새 대화 중 남겨 두고 싶은 하나를 고릅니다. 종이에 날짜를 적어 책 옆에 놓습니다. 더 이야기할지 여기서 마칠지는 아이가 고르게 합니다. 남긴 표현은 활동의 정답이 아니라 그때 떠올린 생각으로 받아들입니다.

     

    말하기가 어려우면 그림 한 곳을 가리키거나 인물 이름 종이를 골라도 됩니다. 만들기를 원하지 않으면 두 칸 활동을 건너뛰고 새 부탁만 말해 봅니다.

    어른의 생각과 답이 달라도 고치지 않습니다. 어떤 말이나 그림에서 떠올린 생각인지 함께 살피면 됩니다.

     

    간을 먹는 설정이 불편하다고 말하거나 책을 덮으려 하면 읽기를 멈춥니다. 무서운 장면을 다시 보여 주거나 끝까지 읽자고 설득하지 않습니다.

    활동 중에도 몸을 돌리거나 자리를 떠나려 하면 쉬거나 마칩니다. 종이의 빈칸을 채우기보다 아이가 참여할 수 있는 방식과 속도에 맞춰 진행합니다.

  • 난 네가 부러워

    친구를 부러워하는 마음을 다룬 그림책이라면, 나는 그 부러움을 얼마나 쉽게 달래려 하는지부터 살핀다. 자기 모습이 못마땅한 사람에게 너도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그 말이 지금의 속상함까지 받아 주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난 네가 부러워》의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열한 아이는 서로 다른 고민을 안고 친구를 부러워한다.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는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각자의 장점을 몇 개나 찾는지보다 단점이라고 여겼던 모습을 왜 다시 보게 되는지에 마음을 두고 싶다.

     

    난 네가 부러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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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소개에서 두려움을 조심성과 연결하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겁이 많다는 말에는 흔히 못 하는 일이 많다는 판단이 따라붙는다.

    같은 특성을 조심스럽다고 표현하면 함부로 나서지 않는 태도가 보인다. 겁을 없애야만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 연결이 다정하다고 생각한다. 두려움 때문에 곤란한 마음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불편 하나로 아이 전체를 설명하지 않아서다.

    조심스럽다는 말 덕분에 겁이 많다는 판단 아래 가려졌던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많은 눈물을 풍부한 감정과 연결하는 사례에서는 관심이 조금 달라진다. 조심성이 행동을 다시 살펴보는 말이라면, 풍부한 감정은 눈물 뒤에 무엇이 있는지 묻게 하는 말이다.

    잘 운다는 이유로 약하다고 여기면 그 사람이 무엇에 마음을 쓰는지 놓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사례를 같은 칭찬으로 묶고 싶지 않다.

    하나는 머뭇거리는 태도를, 다른 하나는 밖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보게 한다. 서로 다른 고민을 좋은 점도 있다는 한마디로 정리하지 않고, 각기 무엇을 지나쳤는지 돌아보게 해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어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 우는 아이에게 감정이 풍부해서 좋다고 말한 뒤 이제 그만 힘들어하라고 한다면, 칭찬도 마음을 재촉하는 말이 된다.

    함께 읽을 때는 이런 해석을 경계하고 싶다. 두려움과 눈물에 좋은 면이 있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반갑게 느껴지지는 않을 테다.

    그 특성 때문에 불편했던 마음과 다른 면을 발견하는 기쁨을 함께 두고 읽고 싶다. 그래야 장점을 찾아 주려는 말이 원래의 고민을 덮어 버리지 않는다.

     

    출판사 소개에는 놀이 취향과 감정 표현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는 설명도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걸음 더 생각하게 된다.

    남자아이가 좋아해야 할 놀이를 미리 정해 놓았다면, 다른 취향에서 쓸모를 찾아 칭찬하기 전에 그 기준부터 돌아봐야 한다. 울음을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앞의 사례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좋은 면을 발견하는 데 관심이 갔다. 하지만 취향을 제한하는 기준까지 놓고 보면, 좋은 점을 증명해야만 존중받는 방식 자체가 마음에 걸린다.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받아들이는 데 꼭 훌륭한 이유가 필요할까. 이 질문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말하는 이야기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출판사가 설명하는 그림 구성도 그 판단과 맞닿는다. 한 프레임에서 세 차례 장면이 이어지고, 아이의 표정과 특징을 가까이 보여 준 뒤 상황 그림으로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구성이라고 한다.

    나는 첫인상에 상황을 더하는 방식이 좋다. 어떤 특징을 보았다는 사실과 그 아이를 다 안다는 판단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얼굴이나 특징만 보고 이름을 붙였어도 상황이 더해지면, 처음의 판단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앞의 두려움과 눈물도 그렇게 살펴볼 수 있다.

    아이를 칭찬할 말을 하나 더 고르는 일보다, 판단할 때 빠뜨린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구성이 이 책의 주제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 뒤에는 자기 모습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는 출판사의 설명도 있다. 친구에게 쏠렸던 관심을 자기 얼굴로 돌리는 장치로 읽힌다.

    다만 앞의 고민과 기준을 함께 생각한다면, 거기서 반드시 마음에 드는 점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여전히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때도 곧바로 칭찬할 말을 고르기보다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 살펴볼 여지를 남겨 두고 싶다. 자기 모습을 보는 일을 또 하나의 장점 찾기 과제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게 이 거울은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시험보다, 자기 모습을 어떤 기준으로 보고 있는지 묻는 장치에 가깝다.

     

    그렇게 거울을 생각하고 나면 두려움을 조심성과 연결한 사례도 달리 보인다. 좋은 이름을 붙여 주는 다정함에 더해, 겁이 많다고 정한 뒤 보지 않았던 태도를 돌아보는 일이 중요해진다.

    눈물 뒤의 감정을 살피는 말과 첫인상에 상황을 더하는 그림 구성도 그 판단을 넓혀 준다. 놀이 취향을 제한하는 기준을 생각하면 그 판단이 어디서 왔는지까지 묻게 된다.

    나는 《난 네가 부러워》의 위로를 이 여러 시선에서 찾는다. 곧바로 자신을 좋아하라고 서두르기보다, 못마땅했던 모습에도 아직 다 보지 못한 면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좋다.

    마지막의 거울도 그래서 마음에 드는 모습을 골라내는 도구보다, 자신에게 붙여 온 이름을 다시 살펴볼 자리로 평가하고 싶다.

  • 말들이 사는 나라

    윤여림 글, 최미란 그림의 『말들이 사는 나라』에서 착한말들은 구름대왕이 강요하는 일을 거절하지 못한다. 나쁜말 삼총사가 떠난 뒤에는 말똥가루를 만드는 부당한 일을 떠맡는다.

    책 소개와 작품 정보 이 이야기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착한말들의 친절보다 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운 말이 오가는 관계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뜻을 말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글은 착한말들의 처지를 통해 친절과 동의 사이의 틈을 생각해 본다.

     

    말들이 사는 나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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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말이라는 이름에는 상대를 배려하라는 기대가 담긴다. 그러나 부탁을 받아들이는 말만 남으면 부탁받은 사람의 사정은 대화에서 빠진다.

    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관계가 되는 셈이다.

     

    구름대왕 앞에서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말들을 보면 친절한 말인지 판단할 때 말하는 사람의 처지도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드럽게 대답하며 상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 일을 계속 감당할 수도 있다.

    착한말들이 떠맡은 일은 그들의 다정함보다, 그 다정함을 이용하는 요구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어른이 아이의 말을 들을 때도 비슷한 어려움이 생긴다. 아이가 싫다고 말하면 말투부터 고치고 싶어질 수 있다.

    말투를 가르치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표현을 다듬다가 그 안에 담긴 거절까지 없애면 아이의 뜻을 들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말했는지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나누어 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거절에 필요한 말이라는 이유로 모든 거친 표현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자신의 불편을 말하면서 상대를 모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일과 감정대로 상대를 대하는 일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화가 났다는 사정만으로 말이 남긴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착한말과 나쁜말을 나누는 기준을 생각할 때도 이 문제는 남는다. 말에 이름을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는 말과 상대의 존재를 깎아내리는 말은 같은 불편함을 주더라도 다르게 들을 수 있다. 거절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모욕과 한데 묶으면 부탁받은 사람에게는 끝내 동의하는 말만 허락된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거절은 여전히 어렵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사정을 심사받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상대가 납득해야만 거절이 유효하다면 거절할 권한은 여전히 부탁한 사람에게 남아 있다. 상대를 배려해 이유를 설명하는 것과 허락을 받을 때까지 설명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

    다정함을 지키려는 사람에게도 어디까지 설명할지 정할 여유가 필요하다.

     

    돌아온 삼총사와 착한말들은 함께 저항해 구름대왕을 물리친다. 이후에는 서로의 말 쓰는 법을 배운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대목을 보면 말하는 용기만큼 듣는 태도도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이 어렵게 꺼낸 거절을 곁의 사람들이 지지할 때 그 말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부담도 달라질 수 있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 한 명에게만 기대면 다른 사람은 자신의 뜻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의 어려움은 넘기더라도 말하는 부담은 계속 같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서로의 말 쓰는 법을 배운다는 결말은 함께 저항한 뒤에도 배울 일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구름대왕을 물리치는 일과 각자가 필요한 말을 익히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인 셈이다.

     

    아이에게 바라는 고운 말을 생각할 때 어른이 아이의 싫다는 말을 어떻게 듣는지도 함께 떠올리고 싶다. 표현이 서툴다면 다듬을 수 있지만, 그 뜻을 들을 자리는 먼저 있어야 한다.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 안에 동의하지 않을 자리도 남겨 둘 수 있을까?

  • 오싹 오싹 당근! 읽고 토끼와 당근의 말 만들기

    『오싹 오싹 당근!』은 당근을 좋아하던 토끼 재스퍼가 당근이 따라오는 듯한 기척을 느끼며 막을 방법을 궁리하는 이야기입니다. 재스퍼의 걱정을 짚으며 당근에게도 말을 붙여 봅니다.

    두 역할로 대화를 나눈 뒤 다른 해결 방법을 그려 보는 활동입니다.

     

    오싹 오싹 당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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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의 마음이 궁금하거나 이야기에 다른 방법을 보태고 싶은 아이가 보호자·교사와 함께 해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눈에 띈 행동과 떠오른 생각을 나누는 활동입니다.

    어른 독자끼리 두 역할을 나누어 진행해도 됩니다.

     

    예상 시간은 읽기 전 3분, 함께 읽기 10분, 읽은 뒤 놀이 7분입니다. 읽는 속도에 맞춰 시간을 늘리거나 한 단계만 골라도 됩니다.

    서로 책을 볼 수 있도록 밝고 조용한 자리에 앉습니다. 책, 종이 한 장, 연필을 준비합니다.

    색연필과 역할 표시용 종이 두 장은 필요하면 더합니다.

     

    이 책은 애런 레이놀즈가 글을 쓰고 피터 브라운이 그림을 그렸으며 홍연미가 옮겼습니다. 교보문고 도서 정보와 책 소개

     

    읽기 전에는 표지와 제목을 보며 묻습니다. “당근이라는 말에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제목의 ‘오싹’은 어떤 느낌인가요?” 대답을 기다린 뒤 아이가 가리킨 곳을 함께 봅니다.

    제목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이유를 캐묻기보다 읽어 볼지 먼저 물어봅니다.

     

    읽는 중에는 재스퍼가 당근의 기척을 느끼는 대목에서 잠시 멈춥니다. “재스퍼는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요?”

    “당근을 막으려면 어떤 방법을 생각할까요?” 대답할 때마다 이유를 묻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설명하고 싶어 하면 이어 듣고 다음 장을 원하면 질문을 건너뜁니다. 결말을 맞히도록 요구하거나 미리 설명하지 않습니다.

     

    1. 읽은 뒤 재스퍼가 걱정했을 것 같은 일을 하나 골라 말하거나 표시합니다. 읽기 전에 예상한 방법이 있다면 책 속 방법과 나란히 놓습니다. 같았는지 달랐는지만 살피고 예상이 틀렸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2. 종이에 토끼와 당근을 각각 간단히 그립니다. 한쪽을 가리키며 “재스퍼는 무엇을 바라나요?”, 다른 쪽을 가리키며 “당근에게 말을 붙인다면 어떤 말을 할까요?”라고 묻습니다. 당근의 말은 아이가 새로 만드는 이야기로 둡니다.
    3. 두 그림을 마주 보게 놓고 역할을 번갈아 맡습니다. 각 역할이 원하는 것을 한 문장이나 몸짓으로 표현합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바꾸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시 말해 봅니다. 어른은 한 역할만 맡고 다른 역할의 답을 대신 정하지 않습니다.
    4. 두 역할이 원하는 것을 종이에 선이나 그림으로 연결합니다. “다른 방법을 더한다면 무엇을 해 볼까요?”라고 묻고 제안 하나를 그립니다. 종이를 보관할지 치울지는 아이가 고르게 합니다.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확인한 뒤 마칩니다.

    말하기가 부담스러우면 역할 그림을 가리키거나 표정만 그려 보도록 제안합니다. 그리기를 원치 않으면 두 역할 중 하나의 말만 나누고 끝냅니다.

    토끼의 걱정과 다른 생각이 나와도 바로 고치지 말고 아이가 본 장면을 함께 살핍니다.

     

    아이가 그만 읽겠다고 하거나 책을 밀어내고 몸을 뒤로 빼면 중단합니다. 끝까지 읽거나 결말을 설명하지 않아도 활동을 마칠 수 있습니다.

    싫다는 답에는 다음 단계를 권하지 않습니다.

  • 코끼리가 말했어요

    《코끼리가 말했어요》에서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인간이 피고로 서는 자리다. 교보문고에 실린 출판사 작품 소개는 동물들이 인간을 재판하고 동물의 증언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살펴보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나는 인간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보다 인간이 자기 행동을 설명하는 말이 동물에게도 납득될지에 관심이 간다. 인간에게 편리한 선택이었다는 말과 그 선택을 겪은 동물의 사정은 다를 수 있다.

    다른 생명의 입장에서 인간의 선택을 돌아보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의 말을 먼저 듣고 판단할 것인지부터 생각해 볼 만하다.

     

    코끼리가 말했어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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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피고로 세운 설정이 좋은 이유는 동물과 인간의 역할을 맞바꾸는 재미에만 있지 않다. 인간이 동물을 보호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시선에 익숙하다면, 여기서는 인간의 결정이 질문을 받는다.

    피고는 자기에게 이유가 있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쪽에서 제기한 말에도 답해야 한다.

    동물을 도울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는 인간이 무엇을 해 줄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런데 인간도 설명해야 할 처지가 되면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에 앞서 자신의 행동부터 살필 필요가 생긴다.

    나는 이렇게 자리가 바뀌는 것이 막연히 동물을 아끼자는 말보다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는 데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다만 피고의 난처함에만 눈길을 주면 동물은 인간의 잘못을 알려 주는 역할로 남기 쉽다. 그래서 동물이 증언하는 주체라는 설정을 더 중요하게 보고 싶다.

    인간을 혼내려고 동물의 말을 듣는 것과 동물이 겪은 일을 들으려고 인간의 자리를 바꾸는 것은 다르다. 내게 더 설득력 있는 쪽은 후자다.

    동물의 말을 증언으로 받아들이면 인간의 행동을 나쁘다고 이름 붙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일이었는지 살피게 된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만으로는 놓칠 수 있는 사정이다.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것과 동물의 말을 자기 판단에 들여놓는 것은 같지 않다.

     

    그렇게 보면 도입에서 떠올린 납득의 문제도 달라진다. 인간의 설명을 더 그럴듯하게 다듬는다고 동물의 사정까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입장에서 이유가 있었다는 말은 상대가 겪은 일을 없애 주지 않는다. 나는 인간의 말과 동물의 증언을 나란히 놓는 구상이 이 차이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누가 더 말을 잘하는지 겨루는 재판으로 읽기보다 인간이 자기 설명에 포함하지 않았던 일을 듣는 자리로 읽고 싶다. 처음에는 인간의 답변에 관심이 갔다면, 이제는 그 답변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더 무게가 실린다.

     

    재판이라는 틀에는 조심해서 보고 싶은 점도 있다. 유죄와 무죄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데 몰두하면 동물의 사정은 판정을 위한 재료로 좁아질 수 있다.

    잘못을 분명히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인간이 잘못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만으로 다른 생명과의 관계까지 정리되지는 않는다.

    출판사 소개는 인간과 다른 생명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 작품의 질문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그 질문이 중요해진다.

    나는 책임을 묻는 재판과 함께 살아갈 관계를 묻는 일이 나란히 있다는 데 이 구상의 매력을 느낀다. 잘잘못을 가리는 질문이 관계의 전부가 되지 않으면서도 공존이라는 좋은 말로 책임을 넘겨 버릴 필요는 없다.

     

    함께 잘 지내자는 말도 상대의 증언을 듣기 전에 꺼내면 너무 쉬운 답이 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살피지 않고 관계를 좋게 만들자고만 한다면,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셈이다.

    반대로 잘못을 지적하는 데서 만족하면 이후의 관계를 생각할 여지가 없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인간에게 벌을 주는 이야기로만 읽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공존을 잘못을 부드럽게 덮는 말로 쓰고 싶지도 않다.

    내게 공존을 묻는 일은 상대의 사정을 듣고 책임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그 과정을 건너뛰지 않는 관계라야 함께 살아가자는 말에도 무게가 생긴다.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어른이 인간의 잘못을 먼저 정리해 주기보다 인간의 설명과 동물의 말을 각각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물어보는 편을 제안하고 싶다.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만 확인하지 않고 무엇을 듣고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묻는다.

    어른도 답을 알려 주는 사람으로만 머물지 않고 자기 판단의 이유를 말할 수 있다. 동물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정해진 환경보호 문장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피고라는 낯선 자리를 함께 생각하려면 인간 쪽 설명을 곧바로 정답으로 삼지 않는 여유가 필요하다.

     

    다시 인간이 피고인 자리를 생각한다. 처음에는 인간이 무슨 말을 할지가 궁금했지만 증언과 공존의 질문을 함께 놓고 보니 답변을 잘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남는다.

    자기 설명 밖의 사정을 듣고도 앞으로의 관계에 답해야 한다. 동물의 말은 인간의 변명을 막는 데만 쓰이지 않고 공존도 책임을 피하는 마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코끼리가 말했어요》의 재판 설정을 이 두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볼 만한 구상으로 평가한다. 인간을 낮춰 놓아서 인상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익숙했던 선택을 다른 생명 앞에서 다시 설명해야 할 일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