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를 연습하던 오토는 낯선 소리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문이 달린 커다란 나무를 발견한다.
이와이 도시오가 글을 쓰고 김숙이 옮긴 『숲속 100층짜리 집』의 여정은 이렇게 연습 도중 들려온 소리에서 시작된다. 책 소개와 창작자 정보 돌보는 사람의 처지에서 이 장면을 보면, 호기심을 따라가는 사람 곁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눈길이 간다.
연습에는 되풀이가 필요하다. 익숙한 자리를 지키고 한 번 더 해 보는 시간에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오토는 자신이 따라가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소리를 들으러 가는 쪽이 언제나 더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하던 일을 계속할 이유만 따지다 보면 새롭게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들을 틈조차 없어진다.
아이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어른에게는 다음 일정이 있다. 마쳐야 할 일도 남아 있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을 모두 따라가기는 어렵다. 아이의 관심을 알아차리는 것과 그쪽으로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은 별개의 선택이다.
잠깐 멈추기로 하면 어른은 자신이 세운 순서의 일부를 미루게 된다.
오토는 나무 집에서 곰 가족을 만나고 위층으로 올라가며 여러 생물을 만난다. 이들은 100층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새를 만난 오토는 100층에 도착한다. 소리를 따라 나선 길에서 다른 이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을 만나는 대목이 흥미롭다.
자기 관심에서 시작한 탐색이 남의 일과 맞닿는 셈이다.
이 만남을 생각하면 기다림을 어른이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내어 주는 시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아이의 관심을 존중하는 동안 어른의 사정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다리는 쪽의 피로와 약속을 지워 버리면 호기심을 지켜 주겠다는 마음은 오래 버티기 힘들다. 끝없이 기다려 주어야 좋은 보호자라는 기준도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늘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서둘러야 하는 날과 익숙한 순서를 바꾸기 싫은 날은 다르다.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도 아이의 관심을 쓸모없다고 낮추지 않으면서 일정을 설명할 여지는 있다. 지금 멈출 수 없다는 말과 네가 궁금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오토의 여정을 호기심의 성공담으로만 읽으면 낯선 소리를 따라간 시간이 연주회라는 도착점으로 보상받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삶에서 모든 관심이 그만큼 분명한 결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끝까지 알아내지 못하거나 곧 흥미를 잃는 일도 있다. 그때까지 쓴 시간이 아까운지만 따지면 호기심은 시작하기도 전에 성과를 약속해야 한다.
아이에게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물은 뒤 곧바로 무엇을 배웠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배운 것을 말로 정리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아직 설명할 말이 없는 관심까지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모르면서 한참 바라본 대상이나 다시 찾지는 않더라도 잠시 발걸음을 붙든 소리도 그 순간의 관심으로 남을 자리가 필요하다.
함께 읽는 어른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을 수 있다. 아이의 질문에 답을 마련하는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도 궁금한 것을 말하는 자리다.
서로 관심이 다른 두 사람이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다만 한쪽이 멈추었을 때 다른 쪽이 곧바로 끌고 가지 않는 순간은 상상해 볼 수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 줄 수 있을까?








